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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보안을 위한 아날로그적 대안Design 2020. 1. 18. 20:47
피해망상적 인간들을 위한 보조기기 (2019)
며칠 전,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4일 동안 개최된
CES 2020이 막을 내렸다. 전 세계에서 혁신을 주도하는
기업들이 온갖 새로운 기술과 제품들을 선보이는 IT 페스티벌의
최강자이자 첨단 테크놀로지의 향연과도 같은 행사에서 현재까지
총 70만 종의 신제품 런칭이 발생했고, 그 순간을 목격하기 위해
올해 17만 명이 넘는 관객이 몰려들었다.
이런 기념비적인 행사의 승자는 누구였을까?
개개인마다 그 기준이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번 CES의 진정한 승자는 행사에 참가하지도 않은 제품이다.
바로 아마존의 Alexa.
알렉사가 내장된 아마존 에코 플러스 2
알렉사와 같은 음성인지 AI 지원 기기들은 우리 주변에서
이제 쉽게 볼 수 있지만, 이들의 침투력이 실제로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준 사례가 바로 CES 2020 행사였다. 아마존은 이번 행사에 앞서
현재 총 10만 종 이상의 스마트 기기가 알렉사를 지원한다고 한다고 밝혔다.
CES 2020에서 알렉사를 지원하지 않는 제품을 찾는 것이더 어려웠을
정도하니, 알렉사가 곧 혁신의 기준점이 되었다고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술의 영향력이 우리 삶 깊숙이 침투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알렉사를 비롯한 다양한 음성인지 AI 시스템 (Siri, 빅스비, 구글 등)은
우리가 이들을 부를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위해 우리의 목소리를
24시간 내내 듣고 있는다. 실제로 검색을 일절 하지 않고 친구에게만
얘기한 제품이 인스타나 페북에 타겟팅 광고로 노출된 것을 알아챈
경험이 누구나 한 번 쯤은 있을 것이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감시하는 알렉사와 대기업들의
디지털 감시 체계에 대항하기 위해 그동안 디자이너들은
다양한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그 중 몇 가지 인상적인 예시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는 Katja Trinkwalder와 Pia-Marie Stute가 디자인한
"피해망상적 인간들을 위한 보조기기" 중 알렉사 모듈이다.
피해망상적 인간들을 위한 보조기기, "알렉사 모듈" (2019)
이 모듈은 알렉사 지원 기기에 장착해서 알렉사를 "마비"시키거나
기기에 가짜 정보를 주입시킬 수 있다. 총 세 가지 모드가 있는데
백색소음을 유발해서 정보가 새어 나가지 못하게 할 수 있고,
사전 녹음된 지시들로 알렉사에게 의미없는 심부름을 시킬 수 있고,
마지막으로 무작위로 선정된 영화 속 대화내용을 재생해서 기기가
가짜 정보를 수집하게 유도할 수 있다.
알렉사에 관련된 기술의 정교함과 복잡함에 대비되는
단출한 형태, 친근한 파스텔 톤의 컬러, 그리고 아날로그에 가까운
단순한 기술은 과도한 테크놀로지의 개입에 지친 현대인들이
지향하는 '뉴트로'적인 흐름에 알맞기도 하다.
피해망상적 인간들을 위한 보조기기, "웹캠 모듈" (2019)
두 번째 기기는 동일한 시리즈 중 "웹캠 모듈"이다.
기업들과 정부, 또는 해커가 노트북의 카메라를 이용해서
이용자들의 사생활을 감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카메라에
테이프를 덧붙인 경험도 많을 것이다.
어렸을 적 갖고 놀았던 장난감 카메라와 비슷한 형태를 띠는
이 모듈은 노트북의 카메라 자리에 장착해서 사용자의 실제 공간 대신
다양한 가상 공간을 디스플레이한다.
대중적인 장난감을 오마주한 형태는 또 다시 단순했던 과거와
순수함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그 천진난만함 뒤편에 숨겨진
위협적인 진실의 존재를 극대화하면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상용될 오브젝트들은 아니지만, 대화를 촉진하고
현시대의 흐름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게하는 컨셉 디자인으로써
그 기능을 충실히 이행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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