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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작품에 투자하는 방법 (ft. 이우환, 아트투게더)Art 2020. 1. 2. 03:21
이우환, Relatum-Existence, 2014
00. (쓸데없이 길어진) 서두 - 투자하게 된 계기
요즘 내 취미 중 하나는 예술 작품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내가 돈이 남아 도는 인간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은 아트북이나 판화 같은 저렴한 소규모 작품들에 관심 가지면서
소소하게 하나둘씩 모아가고 있다.
Palefroi, Epidémie de danse II - Tango, 2016
이 위의 작품 같은 경우에는
내가 20대 중반에 구매한 것 중 처음으로 10만원이 넘어간 작품이다.
Palefroi라는 베를린에 기반하던 작가 듀오의 실크스크린 프린트인데,
2017년(?) 여름 즈음 친한 독립서점 사장님께 소개를 받고
말 그대로 한눈에 반해 그 자리에서 질러 버렸다.
그리고 이듬해 겨울, 언리미티드 에디션 행사에서
우연한 기회로 작가들을 만나게 되어 이들의 매력에 푹 빠져가지고는
함께 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나누는 내내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작업실에 걸어 둬서 볼 때 마다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작품이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예술 작품을 향유하는 즐거움을 알고나니
좀 더 규모가 큰 작품들을 찾아보게 됐고, 투자의 형식으로 공동 소유하는
서비스들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투자 쪽으로 관심이 흘러간 것 같다.
De Wain Valentine, Circles, 1970
하지만 투자라는 행위 자체가 리스크를 감수하는 일이고
극도로 폐쇄적인 예술 시장에서 어떤 리스크가 존재하는지에 관한
명확한 판단이 어려워서 선뜻 투자가 내키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은 (서두가 쓸데없이 길어졌지만)
안전하고 만족도 높은 투자를 위한 나만의 기준들과
아트테크라 불리는 예술품 투자에 관한 내 생각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01. 투자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
우선 아트테크는 본질적으로 (극)장기 투자다.
예술품의 투자 시간 지평이 주로 5~10년 정도이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유의미한 수익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다.
(이는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주식이나 특정 부동산에 비해 환금성이 떨어진다.
예술품은 현물 투자이고, 내가 원하는 대로 매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단점은 반대로 예술품을 경기방어적인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 가능하게 한다.
2000-2009 미국 증시 지표 vs. 현대 미술 판매 지표
예술품은, 위 그래프가 보여주듯이, 경제 호황기에는 주식과 비슷하고
경제 침체기(2008년)에는 주식보다 나은 수익을 낸 기록이 있다.
럭셔리 상품에는 본질적으로 외부 요인에 의해 퇴색되지 않는 가치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즘 심심치 않게 보이는
샤테크, 롤테크 (샤넬, 롤렉스) 등과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이유로, 아트테크는 수익보다는
작품을 소유하는 개인의 만족감이 우선이다.
느긋하게 오래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임하는 것이
만족스러운 아트테크의 첫 단계다.
02. 안전한 투자를 위한 원칙과 기준
투자를 하기로 결정했다면 이제 투자할 작품을 선정해야 한다.
주식이나 부동산과 마찬가지로 남들이 산다고 덩달아 사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고, 나만의 확고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그 기준은 단순할수록 좋다. 나는 크게 두 가지로 접근한다:
1) 작가의 인지도와 화제성이 높은가?
2) 작가가 소속된 기관 또는 컬렉션이 공인되어 있는가?
Jose Dávila, The Moment of Suspension, 2019
작가의 인지도가 높다는 것은
대중과 수집가들의 관심도가 높다는 뜻이고,
이는 다시 말해 수요가 높다는 말이다.
즉, "인지도 = 수요" 인 셈이다.
스마트폰이나 카메라 같은 전자기기를 구매할 때 그 브랜드의 인지도나
매도 시 전반적인 수요를 예측하며 구매하는 것과 비슷하다.
대중적이고 인기있는 모델이 되팔기에 수월한 것은 당연한 이치니까.
예술 작품도 마찬가지다.
전자기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후속작이 나와도
전작의 감가상각이 없다는 것.
두 번째는 작가의 작품이 어떤 기관, 어떤 컬렉션에 소속되어 있는가다.
작가의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아도 예술계 안에서 인정을 받으면 된다.
예를 들어, 내게 생소한 작가의 작품을 루브르나 뉴욕 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면 그 작가의 영향력과 역사적 가치는 보증이 된 것이다.
즉, "공인된 기관 = 보증" 인 것.
내게는 그냥 평범한 피규어일 수도 있지만
어느 덕후는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것처럼
내가 작품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공인된 기관이 그 가치를 보증해준다면, 수집가들의 수요는
확정될 것이고 그러면 어느 정도 안전한 투자가 될 수 있다.
(토이스토리 2가 생각난다)
Toy Story 2 (1999)
03. 자, 이제 실전.
지금까지 이론적인 부분에 대해 알아봤으니
이제는 실제로 투자 모집을 하고 있는 상품을 갖고 분석을 해보겠다.
(아래 내용은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일 뿐, 절대로 투자 추천이 아님을 명시하는 바다.)
아래는 내가 꾸준히 투자를 진행해온 플랫폼,
아트투게더의 상품 페이지다.
서비스를 런칭한지 이제 2년이 지났는데 제법 포트폴리오가 커졌다.
상품을 매각하여 실질적으로 수익을 낸 작품은 아직 한 점 뿐이지만,
미술품 렌탈, 위탁 판매 등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고
타 업체보다 아트투게더가 다루는 작품들이 내 기준에 더 잘 맞아서
새로운 상품이 뜰 때마다 관심있게 보는 편이다.
(국내 작가들의 작품만 취급하는 플랫폼은 개인적으로 추천하지 않는다)
현재 올라와 있는 상품 중에 내 눈을 사로잡은 작품은
다름아닌 이우환 선생님의 회화 작품 두 점.
위에 명시한 기준들을 적용해보겠다.
1) 작가의 인지도와 화제성이 높은가?
이우환 선생님은 예술계에 있는 분이라면 누구든 알고 있던 작가였지만
최근에 일순간 일반 대중의 관심사에 오르게 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BTS의 RM이 이우환의 팬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
부산 시립미술관 방명록
이 일이 있고나서 부산 시립미술관의 방문객이 4배 정도 늘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일화이긴 하지만, 다소 정확도가 떨어지는 지표이기 때문에
좀 더 객관적인 다른 방법으로 인지도를 측정해보도록 한다.
바로 구글 트렌드.
검색어 'Lee Ufan' 과 '이우환'을 비교해보았다.
지난 10년간의 추이를 보니 긍정적인 부분 두 가지가 보인다.
하나는 느리지만 꾸준히 평균적인 관심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따금씩 크게 관심도가 튀었다는 것.
꾸준한 관심이 집중된다는 것은 예술 작가에게
강력한 힘을 보태주고 작품의 가치에도 반영이 된다.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한순간 화제를 모았다가 금세 식는 작가보다
꾸준히 관심을 모을 수 있는 작가가 훨씬 안정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런 이유로 신진 작가보다는
중견 작가의 작품에 투자하는 것이 좀 더 안전하다.
이우환 선생님은 1959년에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장장 60년에 이르는 커리어를 쌓아 온 작가고,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다.
둘째로 언급한 관심도가 크게 튀는 부분에 관한 것이
작품 가격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위 그래프에서는 2011년 여름에 관심도가 급상승한 걸 볼 수 있다.
왜 그런가 하고 구글에 검색을 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홈페이지
바로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그 시기에 회고전을 진행했던 것.
2011년 6월에 문을 연 전시는 엄청난 화제를 모았고,
이우환 선생님에 관한 기사가 뉴욕 타임즈를 비롯한 온갖 매체에 실렸다.
(당시 취재 영상: https://vimeo.com/139078934)
관심도는 전시가 끝나자 곧 사그라들었지만, 이 이벤트는
전시 후 1년이 지나 작품의 경매 낙찰가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 2012. 05. 09: 뉴욕 소더비, "선으로부터 (1979)" $1.4M에 낙찰
· 2012. 11. 15: 뉴욕 크리스티, "선으로부터 (1979)" $1.08M에 낙찰
· 2012. 11. 26: 홍콩 서울옥션, "점으로부터 (1978)" $2.23M에 낙찰
이 낙찰가들은 당시 이우환 작품 중 신고가를 경신했던 기록들이고
가장 최근 2019년 10월 5일 홍콩 서울옥션에서 "동풍 (1984)"이
$1.73M에 낙찰된 사실을 볼 때, 한번 작가의 가치가 오르면
어느 수준 이하로 작품의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이우환 선생님은
첫번째 투자 기준을 확실히 충족한다고 볼 수 있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외관
이제 두번째 기준:
2) 작가가 소속된 기관 또는 컬렉션이 공인되어 있는가?
아까 언급했지만, 작가의 보증 역할을 하는 기관과 컬렉션의 영향력은
정말로 막강하다. 아무도 모르던 작가가 유명한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 작가와 그의 작품의 가치는 상승한다.
이우환 선생님의 작품은 다음 기관들이 소장하고 있다:
· 파리 퐁피두 센터
·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 런던 테이트 모던 갤러리
·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 삼성 리움 미술관
세계 예술의 중심지인 파리, 뉴욕, 런던의 주요 기관들은 물론,서울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리움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이우환 선생님의 웹사이트에 가면 완전한 목록을 조회할 수 있다.누구나 들으면 알고 여행하면서 모두 한 번쯤 들리는,
연간 수백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 모으는 기관들이다.
(파리 퐁피두 센터는 2017년에만 300만 명이 방문했다고 한다.)
이러한 기관들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의 작가라면
예술적, 역사적 가치는 물론, 투자할 가치도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두 번째 기준도 무난히 충족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트투게더 권리증
04. 이제 투자!
이렇게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이 만족스럽다면
다음은 투자를 할 차례.
아트투게더는 작품마다 주식을 발행해서 1주당 1만원의 가격을 책정한다.
주식을 소유하는 것처럼 작품을 여러 명이서 공동으로 소유하기 때문에
막대한 자본금이 필요 없이 단돈 만 원으로도 지분을 소유할 수 있고,
그 지분만큼 렌탈 수익과 판매 수익을 배당 받을 수 있다.
소액으로도 작품을 향유하고 일정 수익도 기대할 수 있어서
투자 입문자 혹은 그저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쉽게 투자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아트투게더의 장점이자 목표다.
나또한 아트투게더로 아트테크를 시작했고
이렇게 좋은 투자 기회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예치금을 입금하고 원하는 주식의 수량을 선택한 뒤, 구매를 마치면
위 사진들처럼 권리증을 발급해준다.
이로써 나도 이 두 작품의 오너가 되었다.
05. 그럼 다음은?
투자를 마쳤으면 다음은 느긋하게 기다리면서 본인 인생을 살아야 한다.
투자한 상품들이 어떤 상황인지 이따금씩 확인하면서 말이다.
얼마 전에는 아트투게더 공지를 통해
렌탈 수익이 발생할 예정인 작품 목록을 보았다.
내가 투자한 작품들 중에서는
이렇게 세 작품이 현재 각기 다른 공간에 대여중이라고 한다.
전부 올해 상반기에 대여 계약이 만료되어 수익이 배분될 것이라고 한다.
구매 금액의 약 3%~5%의 수익이 매달 발생한다고 하니
꽤나 높은 수익률이다.
가장 최근에 투자한 이우환 선생님의 두 작품은
투자 모집이 완료되지 않았는데도 렌탈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하고
모집이 종료되는 즉시 렌탈 수익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한다.
확정된 사실은 아니지만 기대가 되는 것은 사실!
기회가 된다면 시간 여유가 생길 때 내가 소유하고 있는 작품들이
대여되어 걸려 있는 공간에 방문해보고 싶다.
관리는 잘 되고 있는지, 훼손되거나 도난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지,
그리고 각 작품을 마주하는 사람들은 어떤 반응일지.
마땅히 소유주로서 관심가져야 할 부분들인 것 같다.
06. 마치며
기나긴 글을 전부 읽어주셨다면 정말 감사하다.
늘 내 삶의 모든 부분에 미니멀리즘을 적용하려 하는데
말만큼은 그렇지 못한 것이 탈이다.
이글을 읽고 아트테크에 관심이 생겼다면
아트투게더를 방문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회원가입을 하고 바이어 등록을 하면 2000원 쿠폰을 증정한다고 하니
원한다면 8000원으로 투자를 시작해볼 수 있다.
항상 투자 모집을 할 때마다 달성율이 더딘 것 같아서
내심 아쉽기도 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생태계가 완성되었으면 한다.
예술이 있는 삶은 아름다울 수 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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